7007_love750a.gif  성경의 많은 자들은

모두 그 을 함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7007_love750a.gif

 

 

일(1) 은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의 숫자이다.

 

이(2) 는 교통 및 간증, 증거(두 돌판, 두 증인, 두 제자)의 숫자이다.

 

삼(3) 도 하나님의 숫자인데 이는 하나님이 삼일(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며, 한편으로 부활을 가리킨다. 주 예수님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 하셨다.

 

사(4) 는 삼(3)에서 나온 첫째 숫자이며 삼(3)에 (1)을 더한 것으로 피조물의 숫자이다. 피조물과 관계되는 것은 모두 사(4)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땅은 사방이 있고 해마다 사계절이 있으며, 계절마다 네 바람이 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 흐르는 네 강줄기, 느부갓네살 왕이 꿈꾼 우상의 네 부분, 바다에서 올라온 네 짐승 및 피조된 생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 등이 그 예들이다. 또한 주 예수님의 이땅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 사복음서이다. 이와 같은 예들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의 숫자가 사(4)임을 볼 수있다.

 

오(5) 는 책임의 숫자이다. 오(5)는 사(4) 더하기 일(1)로 구성된다. 사(4)라는 수는 피조물을 상징하고 일(1)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상징한다. 피조물인 사람(4)에 우리의 은혜이신 하나님(1)께서 더해지실 때 사람은 책임을 감당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더하기 사람은 책임의 수 오(5)와 동일하다.

 

육(6) 이라는 수는 제육일에 창조된 천연적인 사람을 가리킨다. 이 사람은 타락되었고 나중에 구속되었다. 그러므로 육은 창조되고 타락하고 구속된 사람을 가리킨다. 한편, 육(6)은 삼(3) 더하기 삼(3)으로 구성된다. 삼(3)은 부활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사람이 육(6)이라는 수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활 안에서 삼일 하나님을 소유한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 부활 안에서 삼일 하나님의 안에 있는 창조들된 사람들임을 뜻한다.

 

칠(7) 은 완전한 숫자로 육(6)은 칠(7)에 못 미친다.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모두 하나님이 하신 것에 미치치 못한다는 의미이다. 칠(7)은 완전한 숫자이다. 이것은 오늘날 잠시 완전한 것을 가리키며 영원히 완전한 것을 가리키지 않은다. 삼(3)은 하나님의 숫자이며, 사(4)는 피조물의 숫자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을 합하면, 즉 하나님과 사람이 합해질 때 완전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삼(3)과 사(4)가 합쳐졌을 뿐이며 일시적인 완전함이다. 성경 안에서 일시적인 완전함은 모두 칠(7)을 사용한다, 예을 들어 일주일은 칠 일이며 마태복음 13장에 일곱 가지 비유, 계시록의 일곱 교회, 일곱 촛대, 일곱 천

사,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등, 이 모든 것이 일시적인 완전함을 가리키며 영원 안에서의 완전함을 가리키지 않는다.

 

팔(8) 은 부활의 숫자이다. 칠(7)은 하나의 단락을 말하지만 팔(8)은 칠(7) 뒤에 나오는 첫 번째 숫자다. 주 예수님이 팔일째 되는 날, 즉 안식 후 첫날(눅 24:1-7, 요 20:1-3) 부활하셨으므로 팔(8)은 부활의 숫자이다.

 

구(9) 는 삼(3)곱하기 삼(3)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부활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을 가리킨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숫자가 강조된 것이다. 곧, 하나님의 간증은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이다.

 

십(10) 은 오(5) 곱하기 이(2)로 구성된다. 오(5)는 책임의 수이고 이(2)는 간증의 수이다. 그러므로 오(5)와 이(2)는 간증을 위한 두배의 책임을 상징한다. 또한 인간적인 완전과 온전, 흠이 없는 온전함을 상징한다. 즉, 사람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사람의 숫자가 열이 되면 완전해진다. 마치 사람의 손이 열 손가락이 있으며 발도 열 발가락인 것과 같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십계명을 주셨는데, 이것은 사람의 온전과 완전을 위해 제공되었다.

 

십일(11) 은 십(10)과 십이(12)사이에 있다. 그것은 인간적인 온전을 넘고 신성한 행정의 완전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성경에서 십일(11)이라는 수는 죄스러운 어떤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음을 상징한다. 그분은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시기 위해 죄가 되셨다(출 26:7).

 

십이(12) 의 뜻도 완전이며 이 완전은 영원 안에서의 완전을 가리킨다. 완전의 숫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칠(7)이고, 하나님 십이(12)이다. 칠(7)은 하나님께 속한 완전함이며 오늘날의 완전이다. 십이(12) 또한 하나님께 속한 완전으로 신성한 행정 안에서의 영원한 완전함이다. 한가지 기묘한 일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르렀을 때 칠(7)이라는 숫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에는 열두 문, 열두 기둥, 열두 사도의 이름, 열두 가지 보석, 열두 개의 진주문, 새 예루살렘의 성벽은 백사십사 규빗으로 십이(12) 곱하기 십이(12)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십이(12)는 영원한 완전함이다. 왜 칠(7)은 일시적인 완전함이고, 십이(12)는 영원안의 완전함인가? 삼(3) 더하기 사(4)는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는 것으로 다만 조물주와 피조물이 합한 것에 불과하지만, 삼(3) 곱하기 사(4)는 조물주와 피조물이 곱해진 것으로 이 둘이 하나로 연합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곱하기와 더하기는 다르다. 곱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십이(12)가 대표하는 완전함은 영원함이다.

 

원문출처:결정성경 

사진출처:몰라요

 

출처 BarleyCake 보리 떡 | 보리 떡
원문 http://blog.naver.com/love750a/100040854447